2025. 1. 27. 06:42ㆍ문화노트/드라마 감상
2024년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사극 드라마 <옥씨부인전>이 완결되었습니다.
임지연과 추영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대세 배우들과 함께 신분제의 병폐, 성소수자 차별, 그리고 외지부라는 독특한 소재들로 초반부터 화재를 모았죠. 하지만 이런 소재들의 무게가 점점 떨어져 가는 느낌이라 저는 이후가 기대 반 걱정 반이라는 내용의 포스팅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제 생각에 이 소재들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극 진행을 위한 도구로 소비된 것 같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소재를 분석하며, 그 아쉬운 지점들을 짚어보겠습니다.
15-16화(완결) 줄거리
잠시 앞선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구덕이(임지연)는 주인아씨 김소혜(하율리)에게 학대받던 도망노비지만 우연한 기회에 외지부(조선시대의 변호사)로서 송사에 뛰어들며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던 옥태영(손나은)이 죽음을 당한 후 그녀의 신분과 의지를 이어받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이 되어준 마을 현감의 아들 성윤겸(추영우)과 혼인을 맺는데 그는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들을 지키겠다고 집을 나가고, 그 때문에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그와 똑같이 생긴 옛 정인情人 송서인(추영우 1인 2역)이 성윤겸의 행세를 해줘서 헤쳐나갈 수 있었죠.
하지만 14화 끝부분 부터 구덕이와 송서인의 정체는 최종보스이자 지금까지 사건들의 흑막이었던 박준기와 그와 (큰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위해) 정략결혼을 한 김소혜의 계략으로 점점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구덕이는 다시 김소혜의 노비로 전락하고 송서인은 극형을 선고받고 옥에 갇히게 되죠.
그런데 철혈 이기주의자인 박준기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은 사실 김소혜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만한 사건으로 조선의 사법기관인 의금부의 이목을 쏠리게 하고 자신의 부를 착복하기 위한 음모를 진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양반과 노비를 가리지 않고 괴질이 유행하자 환자들을 한 공간에 격리시키고 그들에게 주어져야 할 식량과 약재를 착복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이런 음모는 그의 계략 때문에 의금부도 뒤늦게서야 파헤치기 시작했지만 의도치 않은 데서 금새 탄로가 나게 됩니다.
바로 괴질인 척 김소혜에게서 벗어나 격리장소에 오게 된 옥태영이 그곳에서 우연찮게 환자들을 돌보던 진짜 남편 성윤겸과 만나고, 그와 전부터 알던 의원 등등 무리를 꾸려 괴질의 정체를 캐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궁에 빠져 있던 그 정체는, 박준기가 나눠줬다는 약을 먹은 사람들이 하루가 지나지 않아 괴질 증상을 보이자 밝혀집니다. 박준기는 독초가 든 약을 사람들에게 퍼뜨려온 것이었죠. 백성을 일부러 희생시키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실로 극악무도한 계획이었죠.
결국 성윤겸이 목숨을 걸고 격리장소를 탈출해 의금부에게 이 사실을 알려 마침내 박준기는 체포되고, 그의 만행은 백성들에게 공개되며 사건은 일단락됩니다.
주제와 메시지
'옥씨부인전'은 신분제의 병폐, 성소수자 차별, 그리고 외지부라는 세 가지 주요 소재를 내세우며 비장미 마저 느껴질 정도로 진지하게 초반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사이에 두고 저항하는 옥태영을 비롯한 주인공 측과 문제를 공고히 하려는 악역들이 국법을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할 줄 알았죠.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은 초반 이후 극을 진지하게 관통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①신분제의 병폐
신분제의 병폐 구덕이의 도망으로 이 드라마를 시작하게 만든 정말 중심적인 소재입니다. 하지만 진지함이나 시대적 고증이 점점 약해져 가는 초반 이후부터는 극 진행을 위한 도구라는 인상이 강한 듯해요. 사실 김소혜 같은 몇몇 싸이코패쓰 같은 양반들이 노비들을 괴롭히지 대부분의 노비들은 잘 살고 있는 듯이 보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약자를 괴롭히는 건 신분제가 없는 지금도 똑같잖아요.
결국 신분제 문제는 조선시대의 실상이 어땠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데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그저 악역 양반들의 악독함을 보여주는 도구로 남았습니다.
②성소수자 차별
소재로서 성소수자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초반에 잠깐 등장하지만, 이후로는 거의 언급도 되지 않죠.
어떤 소재가 극에서 잘 쓰였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먼저 그 소재가 없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성소수자 소재의 역할은 1.성윤겸이 대의를 품고 집을 떠나게 하고 2. 그가 옥태영을 사랑하지 않아 송서인을 대신 남편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개연성과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조선시대에 대의를 품는 계기야 계급 차별이고 빈민 구제고 왜구의 침략이고 쌔고 쌨죠. 하지만 이보다 더 아쉬운 점은 성소수자와 관련해서 작중 성윤겸과 그의 분신 같은 윤해강을 비롯해 여럿이 목숨 바친 대의라고 까지 강조해 놓고 시간이 갈수록 극의 진행을 위한 도구로 소비되는 것이 찝찝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윤겸은 대의도 목숨도 잃어버리고 윤해강 역시 (극의 진행을 위한) 부상을 당한 후 어떻게 됐는지 후일담도 나오지 않게 되죠...
조선에 성소수자 관련 기록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찾아서 당시에 그들에 대한 대우가 어땠는지 조금만 더 진지하게 한두 에피소드만이라도 넣었으면 주제의식도 챙기고 흥미(논란도 같이?)도 더 끌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③외지부
외지부라는 소재는 이 드라마의 독창성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흔한 신분제 문제보다도 더 중요했고 '조선시대'의 '법정 드라마'라는 독특한 장르의 맛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르죠.
사실 옥태영-구덕이가 맞닥뜨리는 수많은 위기들을 찬찬히 돌이켜보면 ’그녀가 외지부가 아니었으면 극복 못했겠다‘ 싶은 사건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사건이 나름 흥미진진했던 초반의 위기, 별감 앞에서의 송사 장면들에서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판결 관련 기록을 만인이 볼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힘없는 외지부의 말을 들을 정도면 그냥 머리 좀 똑똑하고 용감한 인물이 정론을 펴면 말을 들어줬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그나마 중후반으로 갈수록 옥태영이 스스로 머리를 굴려서, 외지부로서 해결하는 사건은 없다시피 합니다. 대신 송서인이 남편 역할을 해줘서, 우연히 비싼 약재가 마을에 많이 있어서, 우연히 최종보스 박준기의 작전이 너무 멍충해(...)전모가 다 걸려서 해결될 뿐이죠.

4. 마무리
'옥씨부인전'은 독창적인 소재의 강렬한 초반부로 저의 기대를 모았지만, 후반부의 전개가 약해지면서 주제의식과 긴장감을 모두 놓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신분제의 병폐, 성소수자 차별, 외지부라는 소재를 시대에 맞게 더 깊이 탐구했더라면, 단순한 로맨스 사극을 넘어서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열연과 초반부의 몰입감 있는 전개는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연출자분들 차기작에서는 이러한 아쉬움을 극복한,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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