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 디지털 시대에 십대가 놓인 여성혐오와 인셀 문화의 현실 [드라마 리뷰]

2025. 3. 18. 22:37문화노트/드라마 감상

클릭 시 출처 이동 -IMDB-

 

영국의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소년의 시간》(Adolescence)이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약 60분 분량으로 4부작의 짧은 시리즈지만, 각 에피소드마다 원테이크(단일 촬영)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국적을 불문하고 깊은 울림과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뚜렷한 스타 연출진이나 배우가 없음에도, 지난주 13일 공개와 함께 영국과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10개국 이상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프로그램으로 등극했습니다. 쟁쟁한 콘텐츠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입소문만으로 왓챠피디아에서 HOT 랭킹 5위에 올라 점점 더 관심을 받고 있죠. 

 

저 역시 2025년 올해 초 시리즈물은 «폭싹 속았수다»와 함께 《소년의 시간》로 이미 대박이라고 생각할 만큼 만족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소년의 시간》의 분석으로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과 함께 그 충격적인 현실진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하 이미지 출처 : TUDUM by netflix(클릭 시 이동)

1 줄거리

Episode 1: "이 아이는 아니예요!"

이 드라마는 영국의 한 마을, 꼭두새벽 부터 경찰 기동타격대가 웬 조직범죄자라도 소탕하듯 가정집 문을 부수고 쳐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배스컴 경위와 그의 파트너 프랭크 형사가 주축이 된 경찰 팀은 놀랍게도 다른 어른들을 제치고 13세에 불과한 소년 제이미 밀러의 방으로 들어가 그를 체포합니다. 

 

카메라는 경찰이 새벽에 제이미의 침실로 들어와 체포하는 첫 장면부터 시작해 그가 경찰서로 이송되고, 법적 조언을 받고, DNA를 채취하는 등 평범한 듯 하지만 범죄 드라마에서 곧잘 생략되고는 하는 과정들을 원테이크로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그리고 이 기법은 제이미와 그를 따라온 가족들이 받는 심리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섬세하게 묘사하죠.

 

01
드라마는 제이미의 체포부터 이후 이웃들에게 받는 괴롭힘 까지 소시민으로서 견디기 힘든 가족들의 고통을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제이미의 가족, 배관공 아버지 에디, 전업주부 어머니 만다, 그리고 누나 리사는 충격에 빠지지만 곧 제이미를 따라 경찰서로 갑니다. 그리고 곧 그가 같은 반 여학생 케이티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경찰 차에서 울며 아버지를 부르는 제이미의 모습은 시청자 입장에서도 처음에는 무슨 오해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제이미도 천역 덕스럽게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가족들도 그를 지지하죠. 하지만 배스컴 경위가 제이미와 아버지에게 그가 케이티를 칼로 찌르는 CCTV 영상을 보여주면서 진실이 드러나고 아버지는 망연자실해집니다.

 

 

두 경찰의 방문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건의 진상 뿐 아니라 아이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입니다. 시설도 학생관리도 문제가 있어보이죠.

 

Episode 2: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의미인지 몰랐단다"

2화에서는 살인 사건 며칠 후 배스컴 경위와 프랭크 형사가 제이미가 다니던 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제이미와 케이티의 관계에 대해 조사합니다. 학교는 본래도 쾌적한 시설은 아닌 것 같다만, 최근의 비극으로 인한 동요로 한층 더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이곳에서 배스컴 경위는 케이티의 단짝친구였던 제이드와 사건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제이미의 친구 라이언과 면담을 하지만 결정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합니다. 이후 라이언이 급작스레 도주해서 잡아들이자 그가 제이미의 범죄에 쓰인 흉기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그것이 어디 있는지는 드라마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배스컴이 제이미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자신의 아들 애덤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입니다.

더구나 애덤은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면담을 요청해 아이들끼리 sns 상에서 쓰는 암호와 같은 메시지들을 해독해주며 제이미가 겪은 일을 설명해 주죠. 

하지만 배스컴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애덤 역시 아이들 간의 관계에서 어떤 위기에 처해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들에게 너무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애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합니다.

 

 

 

Episode 3: "아주 여왕님 납셨군요"

3화에서는 심리학자 브리오니 아리스톤이 제이미를 심리 평가하면서 여러 진실이 밝혀집니다.

제이미는 케이티의 노출 사진이 학교에 퍼진 후 그녀의 심지가 약해진 틈을 타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고, 그녀가 자신을 "인셀"(비자발적 독신남)이라고 불렀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런 사실들보다 충격적인 제이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처음에는 시청자들이 어리고 악조건에 놓인 제이미를 조금은 동정할만 했지만, 그가 성인임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브리오니에게 대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관심을 갈구하는 모습은 브리오니와 시청자 모두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이와 함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제이미가 잡혀갈 때까지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고 '내 주관은 밝히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브리오니의 프로페셔널한 모습도 인상 깊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모두에게 어리숙하게만 보였던 제이미가 충분히 케이티를 살해할 수 있는 인물임을 각인시켜 줍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sns에서 본 80%의 여성들이 20%의 남성에게 끌린다는, 즉 제이미가 생각하기에 자신과 같이 "못생긴" 인기 없는 남자들은 '인셀'로서 도태된다는 '80:20의 법칙'을 신앙처럼 읊조리고 자기 비하와 동시에 여성혐오에 빠진 이 아이의 모습을 보며 '대체 우리 아이들이 어떤 위기에 빠진 걸까'하는 문제의식을 심어줍니다. 

 

 

밀러 가족이 극 내내 생일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유지하려 애쓰는 '억텐'은 그동안 그들 가족이 겪어왔을 고통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Episode 4: "오늘은 당신 생일이니까요"

마지막 에피소드는 케이티의 죽음과 제이미의 체포로부터 13개월 후를 다룹니다.

이 날은 에디의 생일이며, 처음에는 그와 아내 만다가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처럼 일이 잘 돼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에디의 밴이 'nonce'라는 낙서로 훼손당하고(그 의미에 대해), 이를 지우기 위해 들린 철물점에서도 시비가 걸려 소동이 벌어지면서 그들의 생일 계획은 엉망이 됩니다.

 

집에 돌아와 에디와 만다는 제이미의 범죄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그에게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을 자책합니다.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부를 지탱해 주는 것은 그들 곁에 남아있는 딸 리사입니다. 본인도 주변의 괴롭힘을 받으면서 리사는 부모님에게 괜찮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이사를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른스러운 말을 합니다(만다는 리사를 생각해 이사를 가고 싶었지만 이는 제이미를 버려두는 일이기도 해서 부부는 내내 다투고 있었거든요). 

 

에디는 만다와 함께 앞으로 잘해나갈 것을 다짐하며, 홀로 제이미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책으로 그의 침대에서 울부습니다.

 


 

2 캐릭터들의 관계: 세대 간의 갈등 혹은 봉합

 

저도 나름 이런저런 sns들을 사용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애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별세계 언어 같았습니다.

애덤과 배스컴 경위: 방치되던 부자간의 단절

2부에서 배스컴 경위는 제이미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자신의 아들 애덤과의 관계도 돌아보게 됩니다.

애덤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 자주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등교를 피합니다. 이런 모습을 1부에서부터 보였지만 바빴던 배스컴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단지 그가 불성실하다고 생각하며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배스컴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애덤은 케이티가 제이미에게 보냈던 이모티콘의 경멸적인 의미를 아버지에게 알려줍니다.

이를 통해 배스컴은 사건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제이미가 사이버 괴롭힘을 당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후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애덤이 설명하는 메시지는 인터넷에 범람하는 남성계(Manosphere) 문화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배스컴을 비롯한 어른들이 현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디지털 혐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버지와 아들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2부 말미에 배스컴은 그동안 우선시하던 임무를 제쳐둔 채 아들을 데리고 데이트를 갑니다.

이를 통해 가족의 노력이 있다면 친구들과 가족과도 소외되던 애덤이 비슷했던 제이미와는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여운을 남깁니다. 

 

 

제이미와 브리오니: 세대와 성별이 교차되는 뜻밖의 심리전

3화의 면담 장면은 앞서 말한 인터넷 혐오 문화가 아이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브리오니와의 상담에서 제이미는 처음에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무고함을 주장하지만, 심리적 대치 과정에서 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브리오니는 제이미를 평가하러 온 아동 심리학자로, 프로답게 그의 철면피를 한 겹 한 겹 벗겨내자 제이미는 호감, 절망, 분노를 오가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제이미가 "내가 한 일은... 내가 한 일은..."이라며 진실을 밝히려 주저하듯 하다가 별안간 웃음을 지으며 "봐요, 마치 내가 중요한 말을 할 것처럼 희망에 차 있네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의 비열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브리오니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자 의자를 내던지며 마구 분노를 표출하고, 이에 달려온 배스컴 경위를 그녀가 괜찮다고 돌려보내자 "손짓 하나로 보내버리고, 아주 여왕닙 납셨네!"라며 빈정댑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렇게 혐오 감정을 내뱉던 제이미가 면담 말미에 브리오니의 "이번이 마지막 인터뷰"라고 말에 충격을 받은듯하다가 별안간 그녀에게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저를 좋아해요?" "저는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호감을 밝힌다는 것입니다.  

그가 "끌리는 거 말고 그냥 사람으로서요"라고 덧붙이기는 하지만 그의 이성에 대한 호감이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케이티에 대해서와 같이 일방적이고 남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죠.

대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시청자들은 제이미가 떠난 후 참고 있던 감정을 드러내는 브리오니처럼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이미와 에디:  방 안에서 비뚫어져 나오는 아이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 드라마는 제이미가 잡혀가고 남겨진 밀러 가족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들은 제이미가 체포된 후 깊은 슬픔과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이웃들도 결코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고 직접적인 물리적 괴롭힘도 발생합니다. 결국 자신의 생일날인데도 불구하고 에디는 이웃과 장난치는 아이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게 되며 가족들에게도 고성을 지릅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가족이 속절없이 무너지게 두지 않습니다.

사실 제이미가 잡혀갔다 하더라도 본래 문제가 있지 않았다면 그들 가족의 관계가 깨질 일은 없죠.

 

«소년의 시간»에서 아버지 에디 역을 맡은 스티븐 그레이엄은 드라마의 제작과 각본작업에도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느 청소년 범죄 드라마처럼 그들의 동기가 집안사정으로부터 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즉 아버지가 평소에 제이미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술꾼인 어머니가 그를 방치한 끝에 그가 잘못된 길에 빠져들었다는 전개 방식 말이죠.

따라서 제이미가 이해할 수 없는 범죄를 일으키고 이웃들이 가족을 괴롭혀도 에디는 분노를 표출해도 심각한 폭력으로 악화시키지 않습니다. 어머니 만다는 남편의 분노를 이해하고 끝까지 참아내며 남겨진 딸 리사도 부모님을 이해하고 인내하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나가죠.

 

하지만 이는 단순히 행복한 엔딩이 아닙니다.

그레이엄이 말하듯 드라마는 제이미의 범죄가 "'아, 그래서 그가 그런 짓을 한 거구나.'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즉 밀러 부부가 제이미에 대한 방임을 자책하면서도 말하듯 "우리는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 제이미를 방 안에 두고 책상과 컴퓨터를 사줬을 뿐인데 별안간 아이가 사고를 친 것입니다. 그들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가장 안전하리라 믿었던 방 안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고 어쩌면 그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아이들은 방 안에서 비뚫어져 나오게 됐을까요?

 


 

 

3 주제와 메시지: 디지털 시대의 미소지니와 인셀 문화

 

프랭크 형사는 본인이 어릴 적에도 여성으로서 많은 일을 당한듯 학교라면 진절머리를 냅니다.

 

제이미는 자신감 부족으로 방 안에 틀어박혀 앤드류 테이트와 같은 남성계(manosphere) 인플루언서에게 매료된 10대 아이입니다.

사실 작중 제이미가 스스로 테이트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고 그의 용어들을 남발할 뿐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진은 2화의 학교 에피소드에서 배스컴의 파트너인 프랭크 형사가 남자아이들에게 퍼져있는 여성혐오 문화에 진절머리를 내며 내뱉는 "Andrew Tate shite"라는 말로 테이트를 직접 인용합니다. 그와 함께 서구권의 여러 매체들도 «소년의 시간»과 테이트의 상관관계를 언급하죠.  

 

혹시나 궁금하실까 하여, 앤드류 테이트는 격투가 출신의 영국계 미국인 인플루언서입니다. 17년 경 하비 와인스타인 성추문 사건 때 그를 옹호하며 유명해지기 시작했죠. 그의 주장은 여성이 남성에게 속해야 하며 따라서 '운전을 해서는 안 되고, 집을 나서서도 안 된다'는 식입니다. 이외에 더욱 창의적(?)인 그의 발상은 드라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이미의 동급생들은 그를 "인셀"(Incel. 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이라고 불렀고, 그의 태도는 특히 케이티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 심리학자 브리오니를 겁주려 할 때 여성혐오와 대상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셀과 앤드류 테이트의 관계는 기묘하고 굳이 알 필요도 없지만 제이미의 태도에서 잘 드러나 있죠. 테이트가 스스로를 인셀이라 밝히진 않았고 여성혐오적 메시지를 늘여놨을 뿐이지만 인셀들은 이를 흡수해 자신들의 철학(?)으로 만들었다고 보면 되겠네요.

- 굳이 더 복잡한 내막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그레이엄과 함께 «소년의 시간»의 공동 작가인 잭 손은 인터뷰에서 제작진의 목표가 "남성의 분노를 대면하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제이미가 "앤드류 테이트의 목소리"와 같은 메시지에 "세뇌되었다"라고 평가합니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아버지 에디가 묘사하는 제이미는 축구도 복싱도 잘 못하는 허약한 보통 소년입니다. 그리고 3화에서 심리학자 브리오니와 마지막 언터뷰를 마치며 그는 "그저 사람으로서" 그녀가 좋다고 말합니다.

이때 제이미가 표출하는 것은 뒤틀린 소유욕일 뿐입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부모님의 관심도 충분하지 못한 아이들의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었던 애정욕구가 인터넷상의 혐오문화를 만나 뒤틀리지는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마치며: 한국의 청소년들은 괜찮을까?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성적 착취와 온라인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려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심각해졌다고 하죠. 대면 접촉이 감소해서 아이들이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가정에서는 그 기간 동안 가정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인터넷 외에는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한국의 청소년들은 기존에도 과도한 사교육열과 맞벌이로 부모님과 더 소원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 SNS 사용율 역시 높고 특유의 비교문화까지 심각하니 혐오문화에 영향받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상황인식과 대처는 영국을 비롯한 서양에 비해 느린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는 청소년 인터넷 이용 시간을 규제하는 법이 이미 있고, '16세 미만 소셜미디어 금지'를 검토하고 있으며(호주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하죠), 청소년에게 위협적인 정보를 무분별하게 퍼뜨리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무거운 벌금을 선고하는 '온라인 안전법'이 시행된다고 합니다-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논쟁 중이라고 하는데 계속 시행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서양에서는 이렇게 자극적인 디지털 환경이 예민한 십 대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점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라고 그들을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법은 없고 모든 규제는 신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시청하고 한국에서도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는 인터넷 혐오문화에 대해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소년의 시간»은 국경을 초월해 현대 사회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경고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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