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서브스턴스, 압도적인 에너지로 현대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자기혐오를 비판하다

2025. 1. 19. 23:05주목한 영화들

 

이하 출처 -네이버 포토-

 

 

"당신은 더 나은 버전의 자신을 꿈꿔본 적이 있습니까? 더 젊고,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합니다.
  ... 잊지 말아야 할 유일한 것은: 당신은. 하나입니다. 당신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작중 서브스턴스의 광고문구. 더 완벽한 당신을 만들어주겠다는 말과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서로 아이러니하다.)

 

 

<서브스턴스>는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9월, 12월 경에 개봉한 SF 바디호러이자 사회 풍자적인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 

 

나이 든 여성의 몸을 분열시켜 더 젊은 자신을 만들어낸다는 파격적인 소재와 데미 무어의 40년이 넘는 연기인생에서 정점을 찍으며 최초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인간 승리로 화재를 모았다. 

 

나 역시 이 영화의 엄청난 에너지와 끝없이 제시되는 현실과 이상, 나와 타자의 욕망, 한 발짝으로 갈리는 미美와 추醜의 아이러니를 인상 깊게 봤다. 이번 리뷰에서는 서브스턴스의 줄거리에 이어 주제와 이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줄거리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한때 할리우드의 톱스타였지만, 이제는 쇠퇴한 배우로 에어로빅 쇼의 진행자를 맡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50번째 생일날에 자신의 방송사 중역 하비(데니스 퀘이드)가 자신이 나이 들었다며 모욕하는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되고, 이어서 식사자리에서 그에게 해고 통보를 받는다.

 

충격과 분노에 휩쌓인 엘리자베스는 운전을 하며 집에 가던 중 광고판에서 자신의 얼굴이 뜯겨나가는 것을 멍하니 보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그녀는 병원에서 한 남자 간호사에게 "더 서브스턴스"라는 비밀 혈청을 건네받게 되는데, 이 혈청은 "더 젊고 완벽한" 자신을 만들어 준다고 광고한다.

그녀는 고민 끝에 혈청을 받아서 자신의 몸에 주입하고, 반신반의했지만 기절한 자신의 척추 부위를 뚫고 더 젊은 자신, "수(Sue, 마거릿 퀄리)"가 분리되어 나오며 자신이 그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두 몸은 매주 의식과 육체를 교환해야 하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에서 나오는 특별한 안정제가 필요하다.

수는 새로운 젊음과 명성을 만끽하며 톱스타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몸도 인기도 점차 쇠락해 가며 좌절과 외로움만 쌓여간다.

두 인격은 점점 서로를 적대하기 시작한다.

수는 일주일을 넘어 더 많은 시간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고, 엘리자베스는 그런 그녀에게 질투심과 함께 생명의 위기까지 느끼게 된다.

결국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은 둘 모두를 극한 상황에 치닫게 만든다.

 

 

 

 

주제와 메시지

'서브스턴스'는 강력한 힘으로 이야기를 빠르게 돌파해나가는 영화이지만 곱씹어보면 다양한 아이러니로 가득 찬 깊이 있는 영화이다. 

엘리자베스는 왜 영원한 젊음에 대해 집착할까? 왜 자아의 분열에 이어 자기 파괴에 이를 정도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이 영화가 연예계의 잔혹한 현실과 나이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을 묘사하며 현대인의 불안을 드러내는 방법을 살펴보자.

 

개인적 현실과 불가능한 이상의 아이러니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이야기는 개인의 현실과 사회가 주입하는 이상 사이의 메울 수 없는 틈을 구체화한다.

한때 유명한 여배우였던 그녀는 젊음에 집착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나이를 먹고 도태되어 간다는 가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방송사 중역 하비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녀를 직간접적으로 모욕하고 결국 직장에서 쫓아내며 자신들의 욕망을 엘리자베스에게 주입한다. 

 

사실 엘리자베스 스스로가 자신의 노화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묘사는 없다. 

오히려 그녀는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격렬한 에어로빅 동작을 이끌고 마무리로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세요"라고 말할 만큼 건강하고 자기애도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은 그녀는 자신과 만나고 싶다는 옛 남자 동창과의 약속을 위한 단장을 멈추지 못한다. 

자기 눈에 보이는 주름과 처진 피부를 감추기 위해 과장된 화장을 하고 다시 커버를 하다 거울에서 돌아섰다가도 그 화장이 너무 과해서 자신의 노화가 더 도드라져 보일까 봐 지우고 다시 화장을 하기를 반복하다 결국 약속에 나가지 못하게 된다.  

 

'더 서브스턴스'라는 라는 약물이 판타지, 혹은 전신 성형술의 과장된 SF라면, 위와 같은 장면은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느꼈을 법한 자기 외모에 대한 혐오의 극화이다. 

노화도 시시각각 가해지는 몸의 모든 변화도 필연적인 현실이라면 24시간 현대인을 둘러싼 방송매체가 주입하는 판타지는 그것이 퇴화이며 대중은 그런 당신이라면 환영하지 않을 것이고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한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노화를 감추고 거부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결국 '더 서브스턴스'를 복용하며 불가능한 사회적 이상을 위해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자 동창의 태도는 너무 과장되어 거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자격지심이 반영되었기 때문일지도, 그리고 자신을 내친 방송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연과 행복을 찾아갈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약속이 파토남과 동시에 그녀의 삶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신과 타인의 욕망: 바디 호러의 새 지평

그렇다면 '더 서브스턴스'로 인해 갈라진 엘리자베스와 수는 각각 무엇을 상징할까?

<서브스턴스>에는 여러 장르들이 뒤섞여 있지만 가장 중심적으로 '바디 호러'라 할 수 있다. 

바디 호러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인체의 훼손과 변형으로 공포를 주는 장르이며 대표적으로 외계 생명체에 의해 인간의 몸이 강탈, 변형되는 <에이리언>(1979)이나 <더 씽>(1982)이 있다. 

 

그런데 '에이리언'이나 '더 씽' 등 전통적인 바디호러물에서 일어나는 신체변형은 분명히 외부의 침입자에 의해 강제로 일어나는 것이다.

반면 '서브스턴스'의 '더 서브스턴스' 측에서는 원인이 되는 도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약물을 남용하지 말고 "균형을 지켜야 한다'고 계속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겉보기로는 어리석게도 엘리자베스 스스로가 자제하지 못해서 자신의 몸을 파괴하고 변형시킨다. 

 

바디호러물의 대표작인 <더 씽>(1982)에서. 사람의 육체가 강탈 및 변형되어 나온 크리쳐... 중에 그나마 온전한 것을 그나마 블러 처리한 사진. 하지만 이 정도는 가볍게 봐줘야 '서브스턴스'를 볼 수 있다.

 

 

즉 엘리자베스가 만들어낸 수는 자신의 젊은 버전이면서 파괴적인 사회적 압력의 외재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욕망과 사회가 부과한 기대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고 자아가 분열되기에 이른다.

타인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누구나 순수한 나 자신을 감추고 외적으로 보여지는 자아이자 사회적 가면으로  페르소나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더라도 누구나 나의 욕망과 타인이 부과하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수는 그것이 극단적으로 발현될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겉으로 구체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페르소나가 사회적 기준에 충족되도록 만들어져 보기에 좋을지 몰라도 그것이 과장되면 나를 지치게하고 본래의 자신에 위협이 된다. 

'서브스턴스'는 충격적인 서사와 이미지를 통해 사회적 압력, 특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극단적인 페르소나를 강요하며 여성에게 가하는 시선을 비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수는 에이리언과 '더 씽'의 괴물들 옆에 나란히 놓일 21세기형 바디호러 크리쳐이다. 후반부에 나타날 새로운 크리쳐는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관련 이슈들: 데미 무어에 대해

'서브스턴스'는 주연을 맡은 데미 무어의 경력이 이 영화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점에서도 화재가 되었다.

데미 무어는 <사랑과 영혼>(1990)과 <어 퓨 굿 맨>(1992)등으로 9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하며 할리우드의 아이콘이자 세계적인 미녀배우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곧 <스트립티즈>(1996)에서 1250만 달러라는 당시 여배우로서는 기록적인 출연료를 받고 전라의 연기를 펼쳤지만 노출에만 관심이 집중되며 그 해 골든 라즈베리에서 "최악의 여배우상"을 수상했으며 뒤이은 <G.I.제인>(1997)에서는 머리를 삭발하고 미 해군 네이비 씰 훈련과정을 연기하는 투혼을 발휘했지만 역시 같은 상을 받는데 그쳤다.   

 

이같은 계속적인 비평과 흥행 상의 실패는 데미 무어의 의욕을 떨어뜨리기 충분했다.

그녀는 이후 육아에 전념하며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쉬었고, 2007년에는 수 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주고 전신성형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화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타인의 시선과의 싸움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며 인터뷰에서 고백하듯 초등학생 시절부터 의식해오던 것이었다. 

 

'서브스턴스'는 이러한 데미 무어의 연기 경력의 하락세와 평생에 걸친 외모 콤플렉스에 정면으로 반하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녀는 오랜 공백 끝에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2025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데미 무어는 자신이 외모로만 소비되는 '팝콘 여배우'에 머물까봐 두려웠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을 캐릭터에 반영해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호러 영화를 완성시킨 것이다. 

 

 

 


 

마치며

"서브스턴스"는 공포 영화나 코미디, 풍자극 같은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본능, 욕망, 그리고 사회적 이상의 의미를 탐구하면서도 넘쳐나는 에너지와 비쥬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데미 무어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강렬했고, 그녀의 삶과 커리어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나는 그것들이 이 영화에 녹아들어 있는 점도 감동적이었다.

 

나이와 외모에 대한 강박을 주입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개인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을 냉철하게 그려내며 각자의 주의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무척 도발적이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와 수처럼 우리 또한 사회적 기대에 대해 내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싸우며 살아간다.

결론적으로, "서브스턴스"는 데미 무어의 인생과 연기 경력을 반영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같은 영화이다.

 

새해 초가 가기 전에 이 영화를 꼭 한 번 경험해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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