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 희생자에 대한 최고의 예우. 하지만 남아있는 의문과 딜레마.

2025. 1. 9. 23:58주목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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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막달레나 수녀원은 1922년 부터 1996 꽤 최근까지 존립했으며 젊은 여성들을 잡아다가 무보수로 세탁소를 운영해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중 상당수가 성폭행 피해자들이나 고아 소녀들, 미혼모, 매춘부 등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이었으며, 따라서 어떠한 사회적 제재도 받지 않고 다수가 사망할 정도로 가혹한 노동과 감금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현재 까지도 종교계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해 2002년 <막달레나 시스터즈>(클릭 시 출처 이동 -씨네21-)라는 다큐에 가까운 영화로 논란이 되었으며 영화의 원작이 된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동명 소설(2022)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화의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로 주인공 빌 펄롱(킬리언 머피)은 석탄을 팔며 아내와 (지금 기준으로)무려 다섯 딸과 함께 넉넉하진 않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펄롱은 동네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그 곳에서 학대를 당한듯 도움을 요청하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펄롱이 그녀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망설이는 사이, 수녀원장은 소녀를 채가며 그에게 이 일에 대해 눈 감으라는 압박을 주고 이 소문은 동네에서도 퍼져나가 이웃들 조차 조언을 가장한 압박을 가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안위에 위협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녀를 돕게 될까?

 

 

킬리언 머피는 기대한 것처럼 펄롱 그 자체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매일의 고된 노동에 무게를 더하는 과거의 아픔과 공동체가 묵인하는 불의, 양심의 가책은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압박감으로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듯 했다. 킬리언은 이를 몸짓 하나, 한 순간의 눈빛으로도 나타낸다. 

 

그런데 영화는 결말까지 펄롱과 피해자들이 느꼈을 압박과 막막함을 관객에게 옮긴채로 끝내 털어주지 않는다.

가해자에 대한 당찬 응징이나 쏟아내는 분노는 언감생심, 안심할만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펄롱에게 잔소리, 혹은 충고를 퍼부었던 이웃들과 한통속이 되어 그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너 대체 어쩌려고 그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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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제라면 다수 대 소수, 가족 대 타인, 공동체의 관습과 개인의 양심 사이의 도덕적 딜레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딜레마를 제시하되 냉철하게 고찰하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주인공의 선택에 자세한 설명을 늘여놓지도 동의를 구하지도 않는다.

대신 주인공과 피해자가 느꼈을 감정과 실화의 고통을 온전히 전달하는데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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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를 비롯한 관객의 시점에서도 문제로 느꼈을 법한 냉정한 ’현실감각‘은 오히려 불의에 동조한 이웃들의 몫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웃들은 암묵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불의에 동조한 이웃들의 몫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주인공의 행위에 대한 의문과 후과에 대한 걱정을 지나치게 남긴건 아닐까? 그것이 원작에서 부터 의도된 연출이라 해도, 그 때문에 관객들의 불의에 대한 분노나 딜레마에 대한 숙고의 자리는 너무 협소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이러한 표현법에 대한 고민도 더해져서, 제대로된 응징도 반성도 없이 남겨진 실화처럼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남긴 작품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