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로물루스: 더위에 지친 공포 스릴러 최고의 구원투수

2024. 8. 24. 18:34주목한 영화들

 

  에이리언 시리즈도 올해 공포 스릴러도 죽을 쑤고 있던 터였습니다. <로물루스>는 우리의 여름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요?

 

시작하며: 하반기 공포 스릴러의 구원투수 <에이리언 로물루스> 

  야구에서 구원투수는 선발투수가 어려운 상황에 몰렸을 때 등판해서 2~3이닝 안팎으로 대신 볼을 던지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체력이나 다양한 구종보다는 자신의 장기인 구종으로 강력한 구위(공의 위력)를 쏟아내서 삼진을 많이 잡아내고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 짓는 것이 목적입니다. 올해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상반기는 <파묘>가 양분할 정도였다면 하반기에 공포 스릴러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충무로에서는 기대작 개봉이 감감무소식이었고 할리우드에서도 기대했던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 번째 날>이 한국 기준 50여 만 명을 채우는데 그치고 말았죠. 여름철 더위를 날리는데 제격이라는 공포물이 정작 한창 불볕더위에 같이 풀이 죽어 있다니... 관객들도 스릴 넘치는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개봉 11일차에 이미 한국 관객 100만 명을 넘기며 여름철 관객들의 구원투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거든요!

 

 


 

1 또이리언 시리즈! 50년 잘가고 있나..?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는 인간, 에이리언 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조인간과 '인간을 만든' 엔지니어까지 주연급으로 가세해 RTS 게임 마냥 서로 죽고 죽이는 4파전이 벌어집니다. 이는 오랜 시리즈에 깊이를 부여했지만 정작 개개의 작품으로 보면 피치 못하게 너무 장황해지는 단점이 있었죠.

 

  에이리언 시리즈의 7번째 작품인 <로물루스>는 올해 초부터 최고의 공포 스릴러 기대작으로 꼽혔지만 사실 시리즈의 사정전반적으로 녹록치 않았습니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1편이 1979년 개봉한 후로 50년 가까이 이어져오며 SF, 호러, 액션, 스릴러, 크리처물이라는 다양한 장르에 걸쳐있으면서도 각 작품마다 감독의 특기에 따라 어떤 장르에 방점을 찍기도 하면서 시리즈물의 모범을 보여줬습니다. 각 장르를 대표하는 시리즈물 리스트를 대보아라 해도 에이리언이 어렵지 않게 꼽힐 정도였죠. 특히 스콧 감독은 1편에서 부터 '미지의 외계인과 갇힌 폐쇄된 공간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라는 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잘 살리면서도 SF의 굵직한 주제들에 관해 성찰하는 신기를 보여줬습니다. '인조인간은 인간인가? 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인류의 문명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 '강한 의지와 약자에 대한 배려 같은 '인간성'은 세상을 어떻게 살만하게 만드는가?' '여성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는가?'와 같은 것들 말이죠.

 

  하지만 스콧은 에이리언 5, 6편인 <프로메테우스>(2012)와 <커버넌트>(2017)에서는 장르 간 균형을 맞추는데 조금은 실패한듯 보였습니다. 그는 에이리언 1편과 역시 명작이었던 <블레이드 러너>(1982) 이후로 오랜만에 SF로 복귀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1편의 프리퀄로서 자신이 시작한 시리즈의 장대한 서사를 매듭짓겠다는듯 인간과 에이리언의 기원과 인조인간의 반란, 인간을 만든 엔지니어의 음모를 소재로 앞선 주제들에 대해 깊이있는 성찰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SF적 주제에 너무 공을 들인듯 적잖이 장황한 서사와 2% 부족한 장르적 쾌감, 스릴과 액션이 아쉽다는 지적을 받았고 시리즈를 이어나가기에는 어려운 흥행수익을 거뒀죠. 한국에서도 최종 관객수가 100만 명 전후로 시리즈의 명성에 비해 많이 아쉬웠구요. 신예 스릴러 명장으로 각광받던 페데 알바레즈 감독이 스콧의 신임을 받고 시리즈의 7편에 투입된 것은 그런 와중이었습니다.

 

 

2 영리한 감독의 쫄깃한 기믹

 

주인공들은 온통 괴물인 우주선에 갇혀서 모듈 하나 지나갈 때도, 총 한번 쏠때도 신중을 기해야합니다. 출처: 네이버 포토

 

  뛰어난 영화에는 위대한 영화와 영리한 영화가 있습니다. 위대한 영화가 심도깊은 주제에 대한 고찰이나 획기적인 기법을 선보인다면 영리한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읽고 흥행에 최적의 결과를 내놓습니다.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1편은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며 오랜 시간 위대한 영화로 인정받았고 사실 5, 6편도 <블레이드 러너>가 그러했듯 시간이 지나며 위대한 SF 영화로 인정받을지 모릅니다. 이미 저를 비롯한 팬들은 <로물루스>의 성공을 지렛대삼아 <커버넌트>의 속편이 나오며 이 서사시가 완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페더 알바레즈 감독은 영리하게도 이 위대한 시리즈의 주제들을 SF팬들이 아쉽지 않을 만큼은 두루 섭렵하면서도 에이리언이라는 가장 유명한 크리쳐의 특징을 십분 활용해 '외계 공포물'로서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알바레즈는 대표작인 <맨 인 더 다크>(2016)에서부터 스마트한 스릴러 연출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가정집에서 맹인 살인마와의 사투가 그려내는 한정된 장소와 페널티를 가진 빌런이라는 설정으로 극한의 스릴을 이끌어내는 장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로물루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알바레즈는 시각 대신 후각과 소리로 먹잇감을 찾아내는 에이리언을 통과해 다음 모듈로 가야 한다든지 몰려오는 괴물들을 우주선에 피해가 없도록 상대해야 하고 자꾸 불안하게 시간제한을 두는 등 마치 게임 미션과도 같은 극한의 상황 설정으로 뛰어난 스릴과 재미를 선사합니다. 리들리 스콧이 에이리언의 SF 세계관을 깊고 방대하게 펼쳐놓았다면 이 신세대(?) 감독이 거기에 빠지지 않고 영리한 기믹활용과 꽉 짜인 각본에는 잘 이용하는 모습은 앞으로의 작품활동을 기대하게 만듭니다(40대면 감독치고 젊은 편이죠. 스콧 옹을 보세요 앞으로 40년은 더 찍을 수 있습니다!)

 

3 <로물루스>만의 특징은? 주인공들!

<에이리언 2>에서 괴물들과 정면으로 전쟁을 치르러 가는 군인들과 그들을 이끄는 리플리를 보세요(위). 그에 비해 <로물루스>의 레인은 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뿐이고 앤디는 인조인간인데도 뒤에서 응원만..하지는 않지만 주로 도움을 받는 편입니다. 출처: 네이버 스틸컷

 

  그런데 어떤 관객들은 <로물루스>의 줄거리가 에이리언 1, 2편과 너무 비슷하다며 독창성 문제를 지적합니다. 사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이야기의 뼈대는 7편 모두 '여자 주인공이 (알고 보니) 웨이랜드 사의 야욕에 의해 에이리언과 조우하며 위기에 빠지지만 처절한 전투 끝에 살아남는다(혹은 아쉽게 사망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로물루스>의 차별점은 앞서 말씀드린 독창적인 상황설정 외에도 등장인물들의 특징과 행동방식이 있습니다. 일단 전작들의 인물들이 적어도 30대 이상에 전문 기술자나 군인, 과학자였다면 <로물루스>의 인물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아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청년들이거든요.

 

  대표적으로 전편의 주인공들이었던 리플리나 데이빗8과 이번 편의 레인과 앤디를 비교해보세요. 오리지널 에이리언 시리즈 네 편을 이끌었던 리플리는 처음부터 당당한 체구에 통솔력 있는 배테랑 기술자에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무쌍을 펼치는 전쟁병기로 거듭납니다. 반대로 <로물루스>의 주인공인 레인 캐러딘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악덕 대기업의 노예와 같은 삶에서 탈출하고 싶은 하급 노동자로 이전에 우주 비행 경험이나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녀의 파트너인 인조인간 앤디 역시 에이리언 5, 6편의 야심만만하고 능력도 우월했던 인조인간 데이빗 8과는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앤디는 폐기된 모델이지만 레인의 아버지가 생전에 고쳐서 가족처럼 받아들였는데 생전에 레인의 '보호자'로 역할을 입력해 뒀는데 어린 외모에 기능도 좋지 못해서 오히려 레인이 어릴 적부터 남동생처럼 챙겨주며 지내고 있죠. 그들의 오랜 친구인 4명의 타일러 패거리들도 능력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어딘지 어수룩해 보이며 몸이 아픈 친구도 있습니다. 그들이 우주선에 올라타서 소풍이라도 온 듯 철없이 들뜬 모습이나 괴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워서 원격이라면 에이리언의 팬인 제가 코칭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로물루스>의 최대 약점은 이 청년들이 그래도 생각보다는 괴물들에게 저항을 하는데 그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예요. 심지어는 그들 간에도 '어떻게 알았어?'하고 묻고 대답해야 할 정도니까 말 다했죠.. 출처: 네이버 포토

 

  이 6인조는 전작의 인물들과 달리 혼자서는 위기에 제대로 맞서싸우기 어렵습니다. 대신 어린 시절부터 서로만 믿고 기대며 힘든 세상을 헤쳐와서인지 끈끈한 우정을 갖고 있죠. 청년들이 미숙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져도 동료를 끝까지 구하려는 모습은 관객들의 공감과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리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알바레즈 감독님은 이런 인물들의 성격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로물루스>가 시리즈 전편들에 비하면 액션보다는 호러에 방점을 찍었다고 봤어요. 괴물들과 맞서싸우던 리플리와 베테랑들에 비해 레인과 청년들은 살아남으려 몸부림친다는 느낌이고 그 와중에 서로 의지하는 모습은 관객들의 청년들에 대한 공감을 자아내고 스릴을 증폭시킵니다.

 

  몇몇 관객들은 <로물루스>의 주인공들이 전편과 달리 너무 개성이나 존재감이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실은 호러 크리쳐의 아이콘이 된 리플리가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여러분은 공포물의 피해자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공포영화의 피해자는 꼭 부각될 필요는 없고 오히려 그런 주목도를 빌런이나 크리쳐에게 몰아주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대신 공포영화의 피해자들은 관객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인물들이 괴물에게 당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 공포는 반감될 것이고 심지어 좀 죽었으면 싶어 진다면 무슨 범죄 소탕극처럼 돼버리고 말겠죠. 반면 <로물루스>에서 괴물의 습격이 시작될 때부터 끝까지 긴장을 유지되는 데는 이 6명의 친구들을 응원하는 관객들의 마음이 바탕이 됩니다.

 


 

맺으며:  그리고 다음 시리즈에서 더 주목받을 인조인간

 

<로물루스>에서 앤디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더 중요한 역할을 맡을것 같습니다. 출처: 네이버 포토

 

  정리하자면 <로물루스>는 전편에서 강력한 주인공들이 담당하던 액션을 영리한 기믹으로 대체하는 한편 인물들에게 공감을 유도하며 크리처 에이리언이 주는 스릴을 극대화 시킵니다. 하지만 이 거칠고 불안한 주인공 레인과 앤디를 보며 저는 문득 이 영화가 훌륭한 구원투수이되 이후에 나올 새로운 시리즈의 마중물이 되며 새로운 선발투수 역할을 잘 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로물루스>는 개봉 첫 날 월드 박스오피스를 1억 달러를 넘기며 예상보다 훨씬 순항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역대 시리즈 중 최다 관람객 갱신이 확실시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속편이 만들어지는 것은 작중에서도 암시된 만큼 기정 사실이 돼야할 것 같지만, 에이리언이 아무리 공포스러운 크리쳐라 해도 에이리언이 전에 여섯 편이나 시리즈가 이어져온 데에는 리플리나 데이빗8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들의 공이 큰것도 사실입니다. 시리즈를 중장기적으로 이어가려면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주되 주인공이 그 중심을 잡고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바레즈 감독이 <맨 인 더 다크>를 성공시켰지만 그 속편은 각본과 제작에만 참여했으나 실패를 맛본 것도 인물의 카리스마가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해요. 과연 레인이 <로물루스> 이후에 디즈니가 인수한 이 거대 프렌차이즈 시리즈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요?

 

  만약에 <로물루스>가 새로운 시리즈로 이어진다면 작중 보여준 인조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저는 앞서 스콧의 에이리언 5, 6편이 SF적 성찰을 너무 깊게 파고들어 피로감을 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주제가 부정할 수 없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정체성일 뿐더러, 알바레즈는 제 다른 글에서 더 깊이 논의했듯이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조인간이 초래하는 현대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장르적 재미와의 황금비율에 가깝게 그려내었습니다. 저는 레인의 카리스마가 부족했다고 말했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성장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더 가엾게만 보였던 앤디는 오히려 누구보다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SF적 고찰도 곁들인 서사에 두 인물과 그들을 맡은 배우들의 성장도 함께 주어진다면 다음 작품에서 그들은 충분히 극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알바레즈의 작품도 스콧의 작품들도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만큼 앞서거니 뒷서거니 어서 빨리 팬들에게 에이리언의 방대한 세계관을 펼쳐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