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1. 22:27ㆍ메모 남기기
한줄평
미국 센트럴 파크의 어두운 역사를 귀엽게 꼬집는 서사는 탄탄했지만, 닉과 주디의 일방적인 관계성만큼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 화려한 도시 이면에 숨겨진 '센트럴 파크'의 비극
<주토피아 2>는 무려 9년 전 나왔던 전편보다 화려해진 추적 액션과 매력적인 동물 캐릭터들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이 예쁜 포장지를 한 꺼풀 벗겨내면, 미국 도시 계획의 아픈 역사인 '세네카 빌리지(Seneca Village)'의 강제 철거와 소수자 축출이라는 대담한 은유가 드러납니다¹.
포유류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에서 쫓겨나는 파충류와 양서류의 모습, 그리고 스라소니 가문이 '소수민족 여성'인 뱀 과학자의 성과를 착취하는 구도는 현대 사회의 식민주의와 젠더 권력 관계를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알면 알수록 생각거리도 많고 아이들과 보면 나눌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디즈니치고는 꽤나 '매운맛' 사회학 교과서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 "사과가 먼저일 것 같은데..." 토끼귀로도 듣지 못한 닉의 목소리
영리한 사회적 은유와 달리, 영화가 그려내는 주디와 닉의 관계성에는 물음표가 남습니다. 영화 밖에서는 이미 공식 커플로 추앙받는 두 사람이지만, 이번 편에서 주디가 보여준 행보는 사실상 '민폐형 주인공'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장의 지시를 무시한 단독 행동으로 도시를 위기에 빠뜨리고, 그 과정에서 닉을 여러 번 사지로 몰아넣으면서도 주디는 닉의 만류를 농담처럼 치부해 버립니다. 특히 허니문 롯지 장면에서 직전까지 주디의 무리한 추격으로 위험에 빠진 상황을 닉의 만류로 벗어나자 닉이 "사과가 먼저"라고 운을 떼자, 주디는 자신한테 사과하려는 줄 알고 "그럴 필요 없다"며 쿨하게(?) 넘겨버립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탈출에 실패해서 닉이 감옥에 갇히고, (주디가 주도했던) 전편의 업보 때문에 죄수들에게 목숨 위협을 받기까지 하는데, 주디는 자기 미션에 몰두하느라 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닉은 결말부에 다시 주디 앞에 나타나, 언제나처럼 그녀의 목숨을 구해 주지요.

🐰 '디즈니식 페미니즘'이 놓친 관계의 평등
물론 주디의 이런 무모하고 불친절한 행동은 결말부의 성장을 위한 포석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주디의 고해성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제 관점에서는 이 역시 온전한 성찰보다는 '토끼인 나'를 증명하기 위한 자기중심적 동기로 읽힙니다. 닉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나 관계의 권력 구조가 변할 것이라는 암시 대신, 영화는 다시 한번 닉의 헌신적인(게슴츠레한) 눈빛과 "그래도 이 둘은 사랑스럽다"는 분위기로 서둘러 갈등을 봉합합니다.
인종과 종(種) 사이의 평등을 외치는 영화가 정작 가장 가까운 관계 내의 불평등은 '슬랩스틱'으로 넘어가며 희화화하는 데 그쳐도 되는 걸까요? 정치적 올바름(PC)을 지향하면서도 정작 남성 캐릭터인 닉의 희생만을 당연시하는 모습에서, 소위 '디즈니식 페미니즘'의 한계를 본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이 남았습니다².

🎭 가장 세련된 애니메이션에서 엿보인 미국의 아이러니
<주토피아 2>가 역사와 사회적 통찰을 세련되고 또 귀엽게 풀어내는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빈민과 흑인을 몰아내고 세운 센트럴 파크의 역사, 여성 과학자의 성과를 가로채는 권력의 속성은 현실의 불평등한 사회를 정면으로 투영합니다. 그런데 이 명랑하게만 보이는 패키지 속에 담긴 장르의 스펙트럼을 보세요! 액션 어드벤처에 누와르풍 사회고발에 형사 버디물과 로맨틱 코미디까지, 다양한 세부서사가 마치 지휘자의 손짓을 따라 흘러가는 협주곡처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룹니다.
그렇지만 이 정교한 솜씨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닉이 받는 대우에 분통이 터졌고, 동시에 현실의 아이러니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소수민족 공동체를 문답무용으로 철거해 공원을 세웠던 뉴욕은 이제 민주당의 아성으로 불리지만, 그러면서도 세계 최상위권의 극심한 빈부격차 시달리고 있죠. 평등을 외치는 애니메이션을 세계에 내놓는 미국에서, 인종·성차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트럼프가 압도적인 기세로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구요.
이런 아이러니까지 어른들에게는 복잡한 생각의 장을, 아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동시에 제공하는 이 다층적 맥락 구조야말로, 지금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도달한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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