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

[알쓸신좀 #1] 《군체》보는 데 쓸데 있는 좀비물 70년사 — 로메로부터 연상호까지, 함께보면 좋은 추천작들

miru나무 2026. 5. 26. 23:43

 

현실의 공포가 바뀔 때마다, 좀비도 모습을 바꿔왔다.
느리게 걸어오던 시체는 쇼핑몰을 배회했고, 짐승처럼 달리기 시작했으며, 격리된 아파트에서 출몰하기도 했다.
그리고 《군체》에 이르러 좀비는 단순한 ‘전염'에서 ‘연결’로 나아가게 되었다.

📌 좀비 70년사 TL;DR
👉 《군체》와 좀비물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좀비는 원래 ‘시대의 공포’를 비추는 장르라는 것.

핵심 추천작: 로메로의 '시체 3부작'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시체들의 새벽》(1978), 《시체들의 낮》(1985), 박진감 넘치는 21세기 좀비들 《28일 후》(2002), 《28주 후》(2007), 《월드워Z》(2013), K-좀비 수작들 《부산행》(2016), 《킹덤》(2019), 《군체》(2026)

✔️ ‘좀비 영화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인종 차별과 국가 폭력의 불안을, 《시체들의 새벽》에서는 쇼핑몰의 좀비를 통해 소비사회의 허무를 비췄습니다.
✔️ 2000년대 이후 '밀레니엄 좀비'들은 《28일 후》, 《새벽의 저주》, 《월드워Z》에서 달리고, 무리 짓고, 도시 전체를 순식간에 뒤덮으며 속절없이 일상이 붕괴하는 재난 사회의 공포를 상기시킵니다. 
✔️ 《부산행》 이후 K-좀비는 이 속도감을 한국 사회의 각자도생, 닫힌 문, 가족주의, 코로나의 격리사회와 결합시켰습니다. 좀비보다 무서운 것은 감염자를 문밖으로 밀어내는 인간들입니다.
✔️ 《군체》의 좀비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이들은 단순히 물어뜯는 시체가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진화하는 집단지성 좀비입니다.

 


 

들어가며: 개봉 5일 만에 200만, 《군체》는 왜 다시 좀비인가

연상호 감독의 《군체》가 개봉 5일 만(26일)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손익분기점이 약 300만 명으로 언급되는 상황에서, 개봉 초반 성적만 놓고 보면 《왕과 사는 남자》에 이은 흥행 대박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흥행 속도만이 아닙니다.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하나의 ‘우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좀비가 달려들고, 사람들이 도망치고, 누군가 희생하는 재난 영화에 그치지 않고, 훗날 누군가 지금의 복잡한 한국 사회를 설명할 때 “그거 《군체》의 어느 장면 같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래서 《군체》를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좀비가 얼마나 무섭냐”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이번 좀비는 지금 우리의 무엇을 닮았는가?

 

사실 좀비는 늘 그랬습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좀비도 함께 바뀌었습니다. 어떤 시대에는 죽어서도 노동하는 몸이었고, 어떤 시대에는 쇼핑몰을 배회하는 소비자였고, 어떤 시대에는 바이러스처럼 달려드는 감염자였고, 어떤 시대에는 기차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족과 타인을 갈라놓는 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군체》에 이르러 좀비는 마침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으로 진화하고, 인간보다 더 빠르게 적응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번 글은 《군체》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장르 입문서가 되고, 이미 본 사람에게는 이어서 볼 추천작 가이드가 되기를 바라며 썼습니다. 《군체》를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 지난 70년 동안 좀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대표작 중심으로 훑어보며 그 와중에 취향에 맞는 보물을 건지시기를 바랍니다.

 


 

《화이트 좀비》(왼쪽)의 좀비들이 마치 광신도 같다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오른쪽)의 좀비 부터는 좀 시체답습니다.

1. 로메로 3부작: 좀비가 ‘우리 자신’을 비추기 시작한 순간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좀비는 물어뜯고, 감염시키고, 떼로 몰려오는 괴물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초기 좀비는 아이티 부두교 전승에서 온 존재로, 스스로 판단하는 괴물이라기보다 주술에 의해 의지를 빼앗긴 몸에 가까웠습니다. 아이티 섬을 배경으로 한 미국 공포영화 《화이트 좀비》(1932)에서 처럼, 죽었지만 누군가의 뜻대로 조종되는 존재. 말하자면 초기 좀비의 공포는 완전히 낯선 ‘물어뜯는 괴물’보다 ‘자기 의지를 잃은 인간의 몸’에 있었습니다. 한때는 인간이었고, 어쩌면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 혹은 나 자신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좀비물에는 언제나 “저 괴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저것이 정말 나와 다른가”라는 질문이 따라다닙니다.

 

이 질문을 본격화하며, 동시에 좀비를 현대적 의미의 장르물로 확립한 사람이 조지 A. 로메로입니다.

로메로 이전에도 좀비 영화는 있었지만, 로메로 이후 좀비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게 됩니다. 19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좀비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주술적 존재가 아닙니다. 미국의 어느 마을, 어느 집 앞까지 밀려온 현실의 공포입니다.

 

이 영화에서 무서운 것은 시체가 걸어온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더 무서운 것은 좀비가 나타나자 인간 사회의 질서가 너무 쉽게 무너진다는 점입니다. 미디어는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못하고, 생존자들은 협력보다 충돌을 반복하며, 국가는 뒤늦게, 오히려 폭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흑인 남성 벤이 구조대의 총에 맞아 죽는 결말은,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과 국가 폭력의 불안을 강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니까 로메로 이후 좀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와 결합되며 "국가가 무너지고 사회의 위선이 한꺼풀만 벗겨졌을 때 인간의 본모습은 무엇인가"를 묻는 장르가 됩니다. 좀비는 낯선 섬에서 온 괴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썩어갈 때 그 냄새를 가장 먼저 맡고 일어나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똑같이 쇼핑몰에 출몰한 로메로(왼쪽)와 《군체》(오른쪽) 의 좀비. 마치 죽어서도 쇼윈도 안의 상품을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이 흐름은 시리즈의 후속작인 로메로의 1978년 《시체들의 새벽》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무대는 쇼핑몰입니다. 좀비 사태가 벌어진 뒤, 생존자들은 거대한 쇼핑몰로 숨어듭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좀비들이 몰려와 있습니다. 그들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처럼 매장을 배회하고, 유리 진열장 앞을 지나가고, 생전의 습관을 잊지 못한 듯 쇼핑몰로 돌아옵니다.

 

이 장면이 유명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좀비와 인간이 너무 닮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좀비들은 쇼핑몰을 배회하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쇼핑몰 안의 물건에 마구 소비합니다. 바깥세상은 망했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총과 장난감과 전자제품이 반짝입니다. 로메로의 쇼핑몰 좀비는 그래서 묻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어서 소비하는 걸까요,

아니면 소비하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 믿는 걸까요?

 

여기서 《군체》와의 연결점이 생깁니다. 《군체》의 무대 역시 대형 쇼핑몰입니다. 다만 로메로의 쇼핑몰이 소비사회의 성전이었다면, 《군체》의 쇼핑몰은 생명공학에 인간이 이용되는 실험장에 가깝습니다. 1978년의 좀비가 죽어서도 소비에 매몰되었다면, 2026년의 한국의 좀비는 거대 기업과 첨단기술, 감염과 봉쇄의 산물입니다.

 

🎬 이 챕터 추천작&감상 포인트: 로메로의 시체 3부작

1)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좀비 입문자부터 마니아까지 한 번은 봐야 하는 출발점. 지금 보면 느릿하고 투박하지만, “문명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만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흑백 좀비의 질감도 의외로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몇몇 장면의 실소는 어쩔 수 없죠 ^^;

2) 《시체들의 새벽》(1978)
쇼핑몰 좀비의 원전. 《군체》의 대형 쇼핑몰 감염 사태를 더 깊게 보고 싶다면 필수입니다. 로메로는 쇼핑몰을 소비사회의 성전으로, 《군체》는 쇼핑몰을 감염과 집단지성의 실험장으로 바꿉니다.

3) 《시체들의 낮》(1985)
이 작품은 소개 자체가 《반도》와 《군체》의 스포일러(주의!!⚠️)일 정도로, 두 작품이 재밌었다면 필감작입니다. 양아치 군대를 이끄는 헨리 로즈 대위는 《반도》의 황태수 중사와 서상훈 대위를 합쳐놓은 듯하고, 배우고 생각하며 총까지 쏘는(!) 좀비 버브는 《군체》의 집단지성 좀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01
2000년대 '뛰는 좀비'의 대표주자인 《28일 후》와 《월드워Z》. 정말 상영시간 내내 사람이든 좀비든 치열하게 뛰어다닙니다.

2. 밀레니엄 좀비와 포스트 코로나 좀비: 현대에도 좀비가 무서운 이유

로메로식 좀비의 공포는 느림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한 마리 한 마리는 약해 보여도, 계속 몰려오고, 계속 늘어나고,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옵니다. 느린 좀비의 공포는 “당장은 피할 수 있지만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는 압박감이었습니다.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 서서히 붕괴하는 시스템, 피할 수 없는 몰락의 이미지였죠.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좀비는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 변화를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대표작은 대니 보일의 《28일 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의 괴물은 죽은 시체가 아니라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입니다. 하지만 장르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현대 좀비물의 방향을 크게 바꿨습니다. 좀비는 더 이상 느릿느릿 걸어오는 죽음이 아니라, 눈앞에서 폭발하는 감염과 분노의 속도가 됩니다.

이후 《새벽의 저주》 리메이크, 《28주 후》, 《월드워Z》, 한국의 《부산행》 같은 작품들은 달리는 좀비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이제 좀비는 문밖에서 천천히 신음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복도 끝에서 전력질주하고, 계단을 넘어지고, 유리문을 깨고, 도시 전체를 파도처럼 덮칩니다. 《월드워Z》의 좀비 떼가 벽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이 변화의 극단에 있습니다. 좀비는 개별 괴물이 아니라, 산사태나 화마처럼 흐르는 재난이 됩니다.

 

왜 하필 2000년대 이후 좀비는 빨라졌을까요?

가장 단순한 이유는 장르적 갱신입니다. 느린 좀비는 이미 너무 익숙해졌고, 관객은 더 빠르고 강한 공포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상징적으로 보면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21세기의 공포 자체가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테러, 금융위기, 팬데믹, 온라인 혐오, 가짜뉴스, 기후 재난. 현대의 재난은 예고 없이 터지고, 순식간에 확산되고, 개인이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느린 좀비가 “천천히 무너지는 세계”를 상징했다면, 빠른 좀비는 “준비할 틈도 없이 붕괴하는 일상”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달리는 좀비 앞에서 인간은 전략을 세우기보다 먼저 숨이 막힙니다. 이성보다 반응이, 윤리보다 생존 본능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코로나 시대의 공포를 다룬 K-좀비물 《#살아있다》(2020). 다만 평가가 많이 갈리고, 저도 그리 재밌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의 감염 상상력이 겹칩니다. 감염의 공포는 단순히 내가 아플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나를 감염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이면서, 동시에 “내가 누군가를 감염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입니다. 그래서 감염 재난 앞에서 인간은 서로를 보호하면서도 서로를 의심합니다. 마스크는 공동체적 배려가 되지만, 봉쇄는 누군가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좀비물은 이 감각을 가장 단순하고 잔혹한 이미지로 바꿉니다.

물리면 끝난다. 가까운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살려면 문을 닫아야 한다. 그리고 이 세 문장 안에서 인간의 윤리는 무너집니다. 방금 전까지 함께 뛰던 사람이 감염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위험 요소가 됩니다. 방금 전까지 지켜야 할 가족이, 이제는 내가 죽여야 할 감염자가 됩니다.

 

그래서 현대 좀비가 무서운 이유는 단지 더 빨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현대 좀비는 우리 시대의 속도, 감염, 분노, 군중심리, 혐오의 확산을 한 몸에 싣고 달려오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28일 후》의 감염자가 ‘분노’의 바이러스를 몸으로 보여줬다면, 《부산행》의 감염자는 한국 사회의 속도전과 각자도생을, 《군체》의 감염자는 초연결 시대의 집단 동기화를 보여줍니다.

결국 좀비는 느려서 무서웠지만, 빨라져서도 다르게 무서워졌습니다. 느린 좀비는 우리에게 “언젠가 너도 무너진다”고 말했고, 빠른 좀비는 “너는 지금 당장 무너질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구분 느린 좀비 빠른 좀비
대표 이미지 로메로 영화, 《워킹 데드》 계열 《28일 후》, 《새벽의 저주》, 《월드워Z》, 《부산행》
공포의 핵심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 피할 수 없는 몰락 반응할 시간도 없이 붕괴하는 일상
시대감 소비사회, 냉전, 느리게 망가지는 시스템 초가속 사회, 팬데믹, 테러, 바이럴 공포
인간과의 거리 이미 죽은 타자 폭주한 인간, 감염된 이웃
관객 체험 압박감과 피로감의 누적 추격, 패닉, 즉각적인 무력감

 

🎬 이 챕터 추천작: 뛰는 좀비와 감염 재난

1) 《28일 후》(2002)
현대식 ‘달리는 좀비’ 이미지를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대표작. 정확히는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지만, 이후 좀비물이 더 빠르고, 더 신경질적이고, 더 즉각적인 재난으로 변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반도》의 631부대의 모델이 됐을만한 군대가 나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2) 《28주 후》(2007)
전편보다 장르적 쾌감과 재난 스케일이 강해진 후속작. 감염 통제, 군사 관리, 봉쇄가 어떻게 실패하는지 그 이미지를 보고 싶다면 같이 볼 만합니다. 다만, 수많은 명장면들에도 불구하고 너무 '발암캐'에 의존하는 전개가 개인적으로는 흠이었습니다. 

3) 《월드워Z》(2013)
좀비가 개별 괴물이 아니라 거대한 유체처럼 보이기 시작한 대표작. 벽을 타고 올라가는 좀비 떼는 ‘감염의 스펙터클’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장면입니다.

4) 《컨테이전》(2011)
좀비 영화는 아니지만, 코로나 시대의 전염과 봉쇄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라면 이 작품이 최고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대중들과 무력을 동원해 잔인하게 대처하는 국가의 모습도 좀비물과 판박이죠.

 


 

나름대로 좀비와 신파, 오락성을 황금비로 갖춘 한국 최고의 좀비물 흥행작 《부산행》. 출처: 스타뉴스(클릭 시 이동)

3. K-좀비의 시작과 끝: 연상호의 블록버스터 《부산행》부터 ‘AI 좀비’ 《군체》까지

한국에서 좀비가 본격적으로 대중 장르가 된 계기는 역시 《부산행》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국 좀비물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 흥행, 장르적 완성도, 해외 반응을 모두 묶어 K-좀비의 출발점으로 기억되는 작품은 단연 《부산행》이죠.

《부산행》의 무대는 기차입니다. 기차는 한국형 좀비를 설명하기에 거의 완벽한 공간입니다. 빠르게 달리지만, 좁은 공간에 갇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객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존자와 감염자가 갈라져 각자도생 하죠. 좀비가 무서운 것도 맞지만,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위기 앞에서 문을 닫고 편을 가르는 인간들입니다. 《부산행》의 기차 문, 《서울역》의 거리와 역사, 《킹덤》의 궁궐과 성문, 《반도》의 폐허가 된 도시, 그리고 《군체》의 봉쇄된 쇼핑몰까지.

 

누가 가족이고, 누구부터 타인인가?

누가 명령을 내리는 위고, 누가 낙오될 아래인가?

이것이 K-좀비의 핵심입니다.

 

이 점에서 K-좀비는 단순히 “잘 뛰는 좀비”가 아닙니다. K-좀비는 한국 사회의 속도, 경쟁, 불신, 각자도생을 한 몸에 싣고 달립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끝에는 자주 가족이 있습니다. 《부산행》은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이고, 《반도》 역시 가족과 보호의 감정을 중심에 둡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 얘기뿐인 《좀비딸》은 두말할 것도 없죠. K-좀비는 사회 전체의 붕괴를 보여주다가도, 마지막에는 가족이라는 사적 윤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가족도 일종의 편 가르기라는 점에서 다른 비판 지점과 크게 다를 것 없는데도 말이죠. 

 

군체 좀비물의 역사 70년
이렇게 이어서 보면 나타나듯, 좀비물은 백년 가까이 시대의 공포를 대변한 최고의 호러 장르입니다! (AI 생성)

 

그렇다면 《군체》는 어디쯤에 있을까요? 《군체》는 연상호 좀비 세계의 귀환이면서, 동시에 변형입니다.

이번 좀비는 앞선 K-좀비들보다 구체적으로 시대를 대변합니다. 이들은 집단지성을 공유하고, 빠르게 진화하며, 인간과 대치합니다. 여기서 좀비는 더 이상 본능만 남은 몸이 아닙니다. 서로 연결되고, 정보를 나누고, 하나의 무리처럼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러한 '군체 좀비'들의 특징을 인공지능(AI)에 대해 생각하며 떠올렸다고 합니다.

이들이 주는 공포는 AI 시대에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닮아 있습니다. 인간 개인보다 집단 동기화가 빠르고, 한 개체의 경험이 전체의 학습으로 이어지며, 인간보다 효율적으로 적응합니다. 무서운 것은 한 마리 좀비가 아닙니다. 동시에 배우고 동시에 움직이는 무리입니다.

 

이 지점에서 《군체》는 로메로의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괴물은 정말 저쪽에만 있는가? 아니면 위기 앞에서 더 빨리 무너지는 것은 인간 쪽인가? 로메로의 좀비가 소비사회의 거울이었다면, 《군체》의 좀비는 기술로 인한 초연결·초지능 사회의 거울입니다. 쇼핑몰에서 시작된 감염사태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인간의 질서가 어떻게 변이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장이 됩니다.

 


 

1부 결론: 《군체》의 좀비는 ‘또 좀비’가 아니다

처음에는 좀비가 그저 걸어오는 시체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70년의 역사를 지나오면, 좀비는 훨씬 복잡한 존재가 됩니다. 좀비는 의지를 빼앗긴 몸이었고, 억압된 것의 귀환이었고, 소비자의 본모습이자 재난의 공포 그 자체, 문밖으로 밀려난 타자였고, 이제는 집단지성으로 연결된 무리가 되었습니다. 70년 간 좀비는 언제나 우리 시대의 가장 두려운 얼굴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군체》를 볼 때 중요한 질문은 “좀비가 얼마나 무섭냐”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좀비는 지금 우리의 무엇을 닮았는가?

다음 편에서는 이 질문을 한국으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왜 K-좀비는 그렇게 빨리 뛰는지, 왜 《부산행》의 공포는 기차 문 앞에서 가장 강해지는지, 왜 연상호의 좀비 세계는 결국 가족으로 돌아가는지. [알쓸신좀 #2]에서는 연상호 좀비 유니버스와 K-좀비를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 참고자료

  • 조지 로메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시체들의 새벽》(1978)
  • 대니 보일, 《28일 후》(2002)
  • 마크 포스터, 《월드워Z》(2013)
  • 연상호, 《부산행》(2016), 《서울역》(2016), 《반도》(2020), 《군체》(2026)
  • Festival de Cannes, GUN-CHE (COLONY)
  • Festival de Cannes, Before Colony, 5 zombie films that shook the Festival
  • Daum/연합뉴스, 5일 만에 200만 찍은 '군체'... 연상호 "올해 2편 더 공개 예정"
  • 최성민, 「SF와 좀비 서사의 감염 상상력」
  • 권혜경, 「좀비, 서구 문화의 전복적 자기반영성」
  • 송현희, 「좀비, 본능(食)에서 자기 인식(識)으로의 변화」
  • 최수웅, 「좀비 서사의 장르 유동성 연구」
  • 고영리, 「코로나19 시대, 왜 다시 좀비일까?」

 

[《군체》와 함께 보면 좋은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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